오늘 집에 일찍와서 골방기타에 빌빌거리다가 가리늦게 성서가족 피정 신청하고 센게에 오니 사도요한 형님과 베드로의 주옥같은 글들이 있었습니다. 그걸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었는데 평소 제가 생각한 바를 여기 적어보겠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문제는 있습니다. 그게 없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그 문제에 함몰되면 퇴보하고 해결하면 발전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우리 사회에 청년들이 봉사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사람들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을 쳐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사람들. 여기 생명수가 흘러넘친다해도 먹으로 올 시간이 없는 사람들. 그렇다면 왜 시간이 없는가? 바로 현대인의 욕심 때문이죠. 모든 자원을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쓰고자 하는 욕심.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타인을 잃어버렸어요. 자신을 위해 살고 있어요. 그렇게 되니 타인마저 자신의 효용을 위해 이용하게 되는 거죠. 남을 위해 살면 바보가 되고 남을 이용하고 도둑질하고 사기를 쳐야 스마트한 사람이 되는 세상. 4명이 모여도 말 없이 서로의 폰을 만지작하는 세상. 스펙쌓기에서 뒤쳐지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 세상. 사회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람이 법을 만들고 법을 바꾸듯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 혈기 넘쳐야 할 청년들 마저 사회가 이러니 우리가 아닌 "나"는 이렇게 적응해야 한다고 규정을 짓습니다. 남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는 거죠. 까치발로 선 자는 오래 서있을 수 없어요. 이런 체제에서 자살, 우울증 등 정신 병리적 현상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이제부터 대안을 말씀드립니다. 1. 우리 부터 일어서서 살지 말고 앉아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를 쓰레기로 여긴 사도 바오로처럼 과도한 경쟁체에게 함몰되지 않아야 해요. 구체적 실천방안은 한 마디로 "내꺼" 포기하고 "남꺼" 챙겨주자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내가 살까 하지만 남이 나를 도와주고 내가 남을 도와주면 "함께" 살 수 있어요. 뭐 재능기부다 뭐다 하지만 그것도 이 실천방안의 일부가 될 수 있죠. 2.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병든 몸에는 의사가 필요하지만 병든 마음에는 우리가 필요합니다. 물론 항정신병약과 항우울제도 효과가 있지만 그 효능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저는 실제로 정신병리를 앓아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이 작은 봉사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정상으로 만들어 주님께로 들어올리는 산제물이 되게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되면 그룹봉사, 연수봉사, 센터봉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봉사는 작아 보여도 우리가 없으면 사회는 더 지옥에 가깝게 되며 우리는 쓰러지는 기둥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지가 저에게는 있습니다. 3. 삶의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의 가치를 침투시켜야 합니다. 예컨대 직업이 선생님인 사람은 학생들에게 등수 올리는 게 다가 아니라는 당연한 말을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죠. 사람을 대하는 사람은 찾아오는 이에게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친절하게 웃음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예산을 못사는 사람을 위한 정책을 입안할 수 있어요. 그분의 나라는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노력으로 조용히 하늘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질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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