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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도요한  (등록일 : 2012-05-02 11:26:05 | IP : 175.255.239.93 | Hit : 11175)
이메일 |   사도요한
글제목
|  청년 사도직에 대한 관점 생각해보기
언젠가는 한번 모든 내용을 긁어모아서 글을 써봐야겠다 싶긴 했는데,
일단은 "화두"정도만 던지는 글을 써보겠습니다.
봉사자들간의 "사랑"에 관한 글은 아니라서 별로 재미도 없고 반응도 없을거라 확신합니다ㅋㅋㅋ

"청년 사도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은 "청년"이라는 인간의 발달과정상의 한 시기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체, 정신적 특성은 물론 사회적인 특성 역시 바라볼 필요가 있지요.
다음으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익히 알고있는 사도직을 구성하는 세 요소, 왕직, 예언직, 사제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구요,
평신도라는 교회 내 신분이 가지는 위치와 역할, 그리고 사회적인 위치에서의 구조 모두 생각해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드러나있지는 않지만 "운동"이라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운동을 이끄는 표면적, 내재적 동력과 활동의 특성 등이 고려가 되어야겠죠.

대체로 우리 모임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다른 모든걸 배제한 채 "교회 내의 평신도"관점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 내에 이런 역할이 필요하니 평신도가 이를 해야한다"라는 식이죠. 교회의 부름이 절대적이고 중요한 것임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접근이 얼마나 유효한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정신적 가치와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상을 배제한 채 우리 모임의 가치와 방향, 문제와 해결을 교회 내적인 관점에서 풀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일이긴 하겠으나 또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할 때도 성경 안의 사건이 발생한 시기, 사건이 기록된 시기, 그리고 현재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해석, 적용하는 것처럼 우리 모임의 영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부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겁니다. 자, 성직자와 수도자는 교회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신도는 교회 안의 생활만이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이 한계이며 동시에 기회가 되는 겁니다. 교회와 사회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냐, 우리가 가끔은 교회 안의 역할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가끔은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마는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 목마름이 있다면 사회를 성화시키는 것에도 심한 갈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뭐 그런겁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청년성서모임은 교회와 사회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가진다, 왜냐하면 우리 모임의 활동은 문자로서의 성경을 이 시대와 함께 살아움직이게 함으로써 교회가 세상에 바라는 생명의 가치, 약자에 대한 배려, 평화, 공동체적인 나눔, 이런 정신적 가치를 세상에 투영시킬 수 있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거죠.

물론 여기에 한게는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외연이 확장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거든요. 자, 이 외연의 확장은 사실 모든 청년운동이 가지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 시대에 있어서 교회 내, 외에서 2-30대의 활동은 생각만큼 활발하지 않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위기에 처음 직면하게 되는 등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아무튼 이 세대적 특성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마는, 어쨌든 그런 특성이 있고 그런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안의 자성만을 촉구한다면 내부적 피로감은 더 심해질거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잡설이 길어졌습니다는, 어쨌든 그래서 어쩌자는거냐 하시면, 그런겁니다. 분명히 쉬운 문제가 아니니 우선 해야할 일은 뭔가 해결책과 대안을 도출해서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하자 그런건 사실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진정 필요한 일은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자꾸 되짚어보고 진지하게 토론해보고 뭐 이런게 필요하다 하는거죠. 다각적으로요. 그런게 전제가 되어야 모래 위에 성을 쌓는 누를 범하지 않게 될것이다 이런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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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6건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베드로 | 흠흠.....

말씀하신 청년, 평신도,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본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우선 청년이란 위치는...어린이-청소년-청년-어른으로 이어지는 단계 중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지요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어린이와 그보다는 성숙하지만 아직까진 불안정한 청소년,

그리고 사회적, 생물학적으로 위치가 정점에 달한 어른.

이들 사이에 어중간하게 위치한 이들이 바로 우리 '청년'들이 입니다.

불안정과 성숙사이에 위치한, 어른이나 어른이 아니고 어리나 어리지 않은 그런 존재랄까요?!

말장난 같이 들릴진 몰라도 사실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의 본당에서의 위치만 봐도 그렇죠...학생회와 사목회 사이에서

궂은일이란 궂은일은 모두 도맡아하는....ㅋㅋㅋ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존재랄까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청년'들의 위치 때문에 우리 청년들이 얼마든지 교회의 블루오션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논해보라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가깝고 짧은 예로 2차에 걸쳐 성공적으로 끝난

'어른들을 위한 성경말씀과 찬양피정'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생각해요



다음으로 평신도에 대해서 인데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교회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강조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수동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우리 평신도들이지요

물론 예수님께서 세우신 칠성사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가톨릭 교회인지라

성사권을 가진 사제보다 다소 수동적인 입장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평신도의 위치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제에 비해 절대 다수인 평신도의 수적인 면을 고려해 보았을 때,

분명 교회의 주체가 되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요

때문에 꾸준히 평신도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구요

우리 모임에서도 지도신부님은 한분, 봉사자는 수십명에 달합니다...

우리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겠죠?!



끝으로 운동이라는 측면입니다.

이것은 앞서 제가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개개인이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래된 가톨릭 국가가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수도 전체인구의 1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지요

때문에 우리나라의 실정 상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교회안에서의 자연스런 행동이 사회로 나오면 어색해지기 마련입니다.

식당에서 성호 긋고 밥먹고(혼자서!!), 버스 정류장에서 묵주기도하고, 길가다 멈춰서서 삼종기도 바치고,

이런 일들이 일상속에서 쉽지는 않죠....

때문에, 제 생각에는 아직까지는 가톨릭 교회의 내실을 다져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가톨릭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냉담자 수도 꾸준히 늘고있다는 현실을 생각해봤을 때

단순히 숫자에 얽매인 통계보다도, 신자들의 신심을 다지고 교회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요

우리 모임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매번 연수생 수를 걱정해야하고, 봉사자 수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 현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실은 뒤로한채 바깥만 바라본다면....글쎄요 ㅎㅎ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란 말이 있지요...

먼저 자신의 신심을 공고히하고

각자가 속한 공동체가 성숙해지고

그렇게 가톨릭 교회가 공고해질 때

우리가사는 세상이 곧 하느님나라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ㅎㅎ



늘 이런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구체적 실천방안의 부재가 절실하다 느껴지네요 ㅋㅋㅋ

그래서 늘 소심하게 작은것부터...작은것부터....라고 외치고 있는 저입니다 ㅠㅠ

그 작은 것 마저 쉽지 않다는 현실이 ㅋㅋ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

무튼!! 기도하며 꾸준히 노력하면 주님께서도 도와주시겠지요!! 화이팅 합시다요들!!!^^


P.S. 저는 오늘부터 2주가량 창원본사로 출장왔어요 ㅎㅎ

하루종일 컴퓨터 두드리며 사무업무를 보고있답니다

인문계열 나와서 하루종일 도면 들여다보고 숫자계산하려니 정신이 없지만 @.@;;

이렇게 몰래몰래 센터게시판을 들락거릴수 있어 좋네요 ㅋㅋㅋ

이제 곧 몇몇 봉사자들은 센터에 모여 짐옮기고 셋팅할테고 ㅠㅠ

한땐 그 멤버에 항상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거제도를 떠나오면서 미사는 함께할 수 있게되어 기쁘기도 하네요 ㅋㅋ

며칠째 흐린날씨에 기분도 싱숭생숭한 것이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습니다 ^^;;

긴글 다 읽으신 분 계실까요?! 계시면 제가 상줌 ㅋㅋㅋㅋㅋ 암튼 감사합니다요!!

그럼 잠시후에 만나요~~ 사랑하는 모두들 ♥♥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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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요한 | 베드로가 좋은 분석을 해줘서 고맙고 하나만 첨언을 하자면 일반적으로 열심히 봉사를 해온 사람들은 모두가 열심히 봉사를 하면 될거라 생각하기 쉬워져.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그러면서 일종의 "자책의 악순환"이 시작이 되지. 그래서 필요한 게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거야. 교회도 볼 줄 알아야 하고 세상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거지. 자, 그럼 현대의 평신도가 세상에서 가지는 어려움과 청년이 가지는 어려움이란 어떤 것일까? 좀 징징거려 보자고~ㅎㅎ

나는 이렇게 생각해. 실질적으로 청년성서모임의 가장 큰 부흥기는 1990년대였어. 마지막 풍요의 세대였지. 정치적으로 87년 6월항쟁 이후로 나름 민주화도 이루어졌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여유있던 시기였어. 물론 절대적으로 지금이 그때보다 지표상으로 낫지만 상대적 빈곤감의 정도는 그 때가 훨씬 나았지. 그런 배경에서 청년성서모임이 성장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온 유산이 현재의 문제집과 자료집이야. 그 전까지는 어버이 성서모임의 문제집을 그대로 사용했거든. 그 당시 가장 성장했던 집단은 대학성서모임이었지. 대학생이 그 정도 할 수 있는 여유가 됐었거든. 곰곰히 생각해보면 특히 그룹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상당한 거거든. 서울의 성서모임 성공의 비결은 그런 사회적 배경도 어느정도 기반한다고 봐. 내가 어릴 때였던 90년대 말~2000년대 초만 해도 베드로정도 나이면 연수 진행하고 그랬거든. 대학교 3학년정도 나이(스물 둘에서 셋?)면 부진행정도 했었고.

자, 지금은 어떨까? 서울도 요즘엔 창세기 연수생 수가 줄어드는 시점이야. 물론 이후의 과정은 오히려 숫자가 늘었고. 대부분 대학교 1, 2학년에 하던 창세기 그룹원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지. 물론 이후의 과정에 들어오는 숫자가 늘었다는 것은 우리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이런 배경에는 "스펙쌓기"로 대표되는 고3 못지않은 고된 대학생활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거지. 당장 최근에는 가장 호황을 누리는 동아리가 "취업"동아리이잖아?ㅎ 이런 현실을 반영한 실천계획이 필요하다는거지. "무조건 실천!!"을 외치는 거는 박정희시대에 새마을운동 하면서 "잘살아보세"하는거랑 뭐가 다르냐는거지.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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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 ㅎㅎ그렇군요

흠~~말씀하신대로 문제에 접근해본 제 생각은 이러합니당ㅎㅎㅎ

저는 가장 먼저 교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아야할꺼 같아요

시대나 상황에 따라 종교는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먼옛날 종교는 집단구성원들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죠

그러나 오늘날엔 신의 존재유무 그 자체가 논쟁거리입니다

한땐 일국의 황제를 좌지우지하던 교회가

또 다른 시대엔 박해를 피해 골짜기 골짜기 숨어들어야했죠

부패를 바로 잡겠노라 개혁이 일어나기도 하고

잘못을 회개하며 정화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한 나라엔 그들의 물질이 곧 구원처럼 여겨졌지만

반대편에선 너무도 유명한 '종교는 아편'이란 기치 아래 무자비한 박해가 이루어졌죠


그럼 과연 오늘날 우리사회에사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스펙쌓기,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한 청년들에게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결코 좋은 스펙,좋은 직장을 마련해 줄순없습니다

질병과 배고픔이 가장 큰 문제이던 시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낫게하시고

먹을것을 나누어주셨죠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제 생각엔 마음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갈수록 매말라가는 오늘날,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면 우울증아닌 사람이없다는

오늘날에 마음의 평화보다 더 큰 은총이 있을까?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님께서도 늘 여러 모습으로, 가장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전쟁 중엔 용맹하신 모습으로, 가난중엔 양식이 되시어, 슬픔중엔 위로가 되시어.

'정의로 책벌 하셨으나 자비로 구원하셨나이다'

파우스티나 성녀께 연옥의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신후 말씀하셨죠

'내 자비는 이것을 원하지 않으나 내 정의가 이것을 필요로한다'

하느님께서 늘 최선의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듯

그분의 지체인 교회 또한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세상을 섬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할수있는일.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친 이들이 주님과 만날수 있게

그리하여 주님안에서 평화를 얻을수있게, 그들을 주님께로 초대하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 복된 청년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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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요한 | 그래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그룹봉사"로 대변되는 참여의 방식을 어떤 식으로 개선할것인가 하는 것이 될거야. 그게 바뀌기 위해선 성서모임의 중요한 마일스톤들이 바뀌어야해. 연수, 재교육, 피정이 대표적인 예인데, 여기에 대한 유기성에 대한 문제는 다시 정리해볼께ㅎ2012-05-02 | x
민희베로 | ^^ 너무나도 좋은 글들이군요.
저는 두 분 처럼 장황하게 쓸 재주도 능려도 없습니다만!
내부결실을 다지자는 것과 실천법을 찾자는 것에 동감합니다.
전 그 동감에서 머물기보다 작은 것 부터 실천하자에 초점을 두고 싶은데요!
제일 먼저 우리 봉사자들을 더욱 더 사랑하는거겠죠.
조금 더 자주 모든 봉사자에게 문자든 직접적 만남이든 기도든 최선을 다해 사랑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맘속에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
그리고 밖으로는 성당 예비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서 그 청년들의 선택이 흐려지지 않게 식어버리지 않게 지켜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조금 번거로울 수도 있고 사랑할 사람이 많아질 수록 시간도 조금씩 더 걸릴 수도 있겠지만
나의 작은 사랑의 표현이 한 알의 밀알이 될 거라 저는 믿습니다!
화이팅요!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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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요한 | ㅎㅎ사실 세상을 진짜 바꾸는 것은 작은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지 그런 실천의 방향성이나 방법론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하는것이거든요. 한편으로는 "센터"에서 하는 실천중에서는 이런 담론을 나누고 구체화하는것도 필요한거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좀 치열하게 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생각도 있었고 뭐 그래서 이야기를 자꾸 길게 하게되네요. 사실은 단순한건데요ㅎㅎㅎ2012-05-04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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