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글쓴이 |
|
강 토마스
(등록일 : 2008-09-06 15:19:14 |
IP : 210.104.250.44 |
Hit : 5802)
|
|
이메일 |
|
time2100@naver.com
|
|
글제목 |
|
|
영혼의 어둔밤
강성복 토마스 아퀴나스
손만 뻗으면
느낄 수 있었던 하늘이
멀게만 느껴짐은
무슨 까닭입니까?
울기만 하면
먹을 수 있었던
어머니의 젖을
이제는 먹을 수 없음이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모든 잘못과 허물을
고백했던 옛 모습이 어색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주님의 구속사업에
합당한 자 되려는 뜻이 아닌
나의 평안과 사라지는 죄의식의
자기만족을
이제는 스스로가 두려워함이옵니다.
땅에 붙은 제가
영성의 대가도 아니옵고
구더기 죄인도 아니옴은
무슨 까닭입니까?
영성의 대가는 당연히 아닐진데
구더기 죄인이 아니옴은
그것은 아빌라의 데레사같은 성인이
스스로를 칭하는 너무 위대한 말이옵니다.
땅에 붙은 제가
스스로 아빌라의 데라사처럼
고백해야함은
무슨 연유입니까?
구더기 죄인이 아닌
다른 칭호는
아빌라의 데레사의 길을 따르지 않고
다른 길을 걸으려는
뻔한 수작이옵니다.
경건에 집착을 버리옵고
축복에 의지도 버리옵고
신앙에 자기만족을 하지 말 것이며
이 시(詩)에 교만을 버리옵소서.
**
기도나 시를 제가 또 써버렸습니다.
다른 기도나 시가 온다면 바로 교체부탁드립니다.
이 시는 제 요즘 영혼의 상태처럼
삭막합니다. 사막과 같이.
이 시의 화자는 영혼의 어둔 밤을 거닐고 있습니다.
화자는 이래저래 주어들은 것은 많아
어둔밤을 주시는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둔 밤은 결국 영혼의 성숙을 이루어 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 터널을 무사히 나온다면 다시 축복의 대낮을 맞이할 것입니다.
스스로 그 상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어둔밤을 감사하며 시련을 이기고 있는 화자에게 부담이 됩니다.
결국 어둔 밤도 주님의 축복의 다른 이름이니까요.
그래서 "이 시에 교만을 버리게 해달라"고 너무나 처절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