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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등록일 : 2007-09-04 21:3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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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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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사랑하는 나의 님이여
당신으로 하여금
제가 살게 하소서.
세상의 무게보다
더 한 십자가 위에서
주는 죽으시었네.
저 역시 세상의 고통을 한껏 안으며
춤추게 하소서.
님은 나의 모든 것.
님이 아니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오리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오리다.
오 사랑하는 나의 님이여.
당신으로 하여금
제가 살게 하소서.
제가 살게 하소서.
제1과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
우주는 빅뱅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에너지가 밀집한 한 점에서 무한소의 시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밝힐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대과학이 왜 그 점이 생겼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떻게가 과학의 영역이라면 왜는 바로 종교의 영역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하느님에게서 찾는다.
자동차는 사람과 물건을 빠른 시간에 이동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만든 모든 사물은 그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답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훌륭한 자동차는 안전하고 빠른 자동차, 즉 목적에 충실한 자동차이다. 결국 사람도 만든 목적에 충실한 사람 그러니까 하느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일 것이다.
자동차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가 있다. 만약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가속 페달을 밟는다면 사고를 면하기 어렵다. 이렇게 자동차에 그 조작법이 있듯이 인간에게도 조작법이 있다. 그 조작법을 우리는 십계명이라고 하고 조금 자세한 설명서를 성경이라고 한다.
창세2,3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오리게네스의 문자적, 윤리적, 영적 해석.
1. 문자적: 무조건 우리도 쉬어야 한다.-회칠한 무덤
2. 윤리적: 예배와 이웃사랑. (잃어버린 신원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구절)
3. 영적: 히브리서 4,4.10.11 같이 읽기
제2과 사람을 창조하시는 하느님
창세2,5
비-남성의 씨, 땅-어머니, 사람-남자,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시고-처녀,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처녀
창세2,6
땅-성모님, 안개-성령
처녀잉태
창세2,21
사람-예수님, 깊은 잠-십자가상 죽음, 갈빗대-옆구리를 창에 찔림
창세2,22
사람-예수님, 여자-교회
창세2,24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떠나 교회와 하나되리라는 예언
제3과 죄의 발생과 확대
*뱀의 말 “죽지 않는다.”-육체는 죽지 않지만 영적으로는 죽는다.
*하느님처럼-교만
*창세3,7-성욕
:죄는 교만으로 시작해서 성욕으로 발전한다.
*생명나무-그리스도의 십자가(크리스마스 트리)
*세상은 시험의 장.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새로운 인류가 필요.
제4과 홍수와 바벨탑
*의인인 노아만을 살려두심: 단 한 여자가 유혹에 넘어감으로써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단 한 여자가 순종함으로써 새 생명이 시작되었으며 단 한 명이 피를 흘림으로써 모든 죄가 씻겨짐.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마음을 가져야.
*노아의 방주는 나무로 만든 것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또한 우리 교회를 상징한다. 우리가 노아의 방주에서 뛰어내리면, 교회를 떠나면, 십자가를 거부하면 우리는 가라앉아 지옥(심연, abyss)로 가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높아지려하면 분열이 생김.
제5과 아브람을 부르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약속 하나만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시키는대로 함. 보지도 못한 하느님나라를 믿고 살아야함.
*아브람이 자기의 터전을 포기했듯이 우리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함.
*예레4,4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할례를 하여 자신을 주님께 바쳐라.
너희 마음의 포피를 벗겨 내어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의 악한 행실 때문에
나의 분노가 불꽃처럼 터져 나와
아무도 끌 수 없게 타오르리라.
->할례의 의미는 바로 민감한 양심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 굳은살로 감각이 무뎌지듯 죄의식마저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할례는 바로 죄에 대한 각성을 뜻하는 것이다.
제6과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
*세 손님: 삼위 일체적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당신의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빠져나온 죄의 삶을 자꾸 그리워하며 뒤를 돌아보고 그 때의 죄를 다시 범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몸이 자꾸 소금 기둥으로 변해서 도중에 말라버려 생명의 땅에는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목적지가 보인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달립시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 즉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라의 모습은 즈카르야(루카 1,18)의 모습과 비슷, 성모님(루카1,38)과 대조.
제7과 야훼이레
*왜 우리는 시험을 받아야 하는가? 1베드1,7.
*믿음은 이성을 초월한다.
*22,3-4 순서바뀜: 아브라함의 심리가 복잡. 사흘째: 요나도 물고기에서 삼일, 예수님께서도 사흘동안 무덤에 계심,
*22,5 나와 이 아이는...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하느님을 믿음.
*22,6 장작:십자가, 이사악:예수님, 불:성령, 칼:희생제사의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음
*22,10 손을 뻗쳐: 아담과 하와가 손을 뻗쳐 선악과를 따먹으며 불순종을 했는데 아브라함은 손을 뻗쳐 아들을 죽이려함으로써 하느님께 순종함.
제8과 이사악과 그의 두 아들 이야기
*왜 이사악은 야곱보다 에사우를 더 좋아했는가? 이사악은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했을 때 공포를 느꼈고 그 후 매사에 움츠리는 사람이 되었음. 이사악은 자기 안에 개발되지 않은 야성의 세계를 에사우에게 투영하면서 대리만족을 누림.
*<퀴즈(상품:도서상품권)>
이사악이 소극적 성격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은? 26, 17-22
*이사악과 레베카의 부부사이는 어땠을까? 초기에는 레베카의 적극적이고 당찬 성격이 이사악의 소극적인 성격을 보완하는 듯 했으나 결국 성격차이로 소원해졌다.
*레베카의 말년은 어땠을까? 남편, 아들, 며느리에게 냉대. 사랑하는 야곱을 보지 못함. 레베카가 죽었을 때 이사악은 애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레베카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았다.
제9과 야곱을 지켜주시는 하느님
*야곱은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자기 인생이 곤고함의 나날이었다고 했는데 그의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지나온 인생에는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영원히 맑게 빛나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죽어가는 야곱의 희미한 눈빛 속으로 젊은 날 메소포타미아 하란 땅에서 우물의 돌뚜껑을 단번에 열던 젊은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젊은이 앞에는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여인이 서 있다. 빛나는 여인의 얼굴은 하늘을 향해 놓여 있는 금층계보다도 더 빛나고 있다.
*창세29,27 왜 야곱은 할 말을 잃었나? 야곱이 장자권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속임수로 장자권을 따냈으므로 라반의 이 말은 야곱을 비웃는 말이다. “너희 고장에서는 아우가 형의 장자권을 빼앗을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 고장에서는 그럴 수 없다.”
*라헬과 레아의 찢겨진 마음을 나눈다.
제10과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
*요셉 이야기에서 옷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전체 이야기를 하나의 끈으로 묶어주는 재료: 장신구 달린 옷, 청지기 옷, 이집트 재상들이 입는 고운 모시옷
*요셉의 성실성은 어디서 드러나는가? 아버지의 명령, 이집트 경호대장 집에서, 주인마님의 유혹 거부, 국정에 임했을 때
*야곱: 눈먼 아버지 이사악을 옷과 염소고기로 속임
야곱의 아들: 편애로 눈먼 아버지 야곱을 옷에다 염소의 피를 묻혀 속임
*요셉을 유혹에 빠지도록 만드는 구실은? 보상심리, 은밀한 관계를 맺기 좋은 상황, 알려지면 뭐가 대수겠는가?, 주인마님의 자존심
*미끼는 아름답다. 하지만 물면 죽는다.
*미움으로 변한 사랑에 버금가는 사나움이 하늘에는 없고, 무시당한 여자의 분노에 버금가는 격분은 지옥에도 없다.
*유다의 탄원 창세44,18-34 “성서 안에서 한 인간의 진실한 뉘우침과 회개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루카 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제외하고는 이것밖에 없을 것이다.”-성서학자 웬함
->요셉을 미워했던 아버지의 편애를 근거로 베냐민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간청
*베냐민지파(요나탄, 바오로)-유다지파(다윗, 예수)
제11과 사랑이신 하느님
*가족을 고센 땅에 살게한 이유:
1.좋은 목초지
2.국경에 접해 있기에 언젠가 야곱의 아들들이 약송의 땅으로 돌아갈 때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이점
3. 이스라엘 혈통의 고유성 보존
4. 친인척 정치 개입을 차단
*야곱은 요셉의 극진한 봉양을 받으며 17년을 산다. 17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햇수이다. 욧베이 가나안에서 아버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았던 햇수가 17년이기 때문이다. 설화자는 의도적으로 두 개의 17년을 대칭시키고 있다. 첫 17년이 아버지 야곱이 어린 아들 요셉을 돌보아 준 시간이었다면, 나중 17년은 성장한 아들 요셉이 노야갛ㄴ 아버지 야곱을 돌보아 드린 시간이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부모의 한량없는 은혜에 맞갖게 자식도 늙으신 부모를 극진히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기도
영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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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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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이랑 비슷한데 조금 손질했습니다.200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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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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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니 좋네~^^200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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