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대하여 강토 기도하십시오. 억지로라도 기도하십시오. 많이 기도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적게 기도하면 위험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벌 받습니다. 하느님은 의지를 보고 상을 주는 것이지, 감정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 비오 신부)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모임 사람들은 개인 기도를 그다지 챙기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기도는 하기 싫다.”는 말은 좋게 포장된 핑계에 불과하다.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기도를 많이 할 수 있겠는가? 레지오는 활동보고가 있다. 성령기도회는 연말에 보고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제도는 기도를 늘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어차피 죽고 나면 우리가 뭘 했는지 서로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상에서 기도 좀 적게 한 것이 공개되는 것은 죽은 후 만났을 때만큼 큰 부끄러움은 아닐 것이다. 기도 많이 한 사람은 자랑스러워도 된다. 기도 적게 한 사람은 많이 부끄러워 해야 한다. 따라서 성령기도회의 1년보고를 도입하고 이를 돕기 위해 전례부에서 매주 집계를 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안한 걸로 간주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사람이 불행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다. 따라서 억지로라도 행복해지자. 억지로라도 기도하자.
모임 전 기도에 대해서 나는 룸꼬기도에 찬성한다. 묵주기도나 십자가의 길 등의 기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룸꼬기도는 자신의 언어를 가족들 앞에서 고백하는 기도이다. 그 언어가 단지 힘들다는 말이라도 그 언어가 단지 행복하다는 말이라도 그 언어가 단지 침묵이라도 우리에게 가족들의 행동, 몸짓 등은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룸꼬기도 만큼 자신의 언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좋은 기도는 없다. 조스테 형님의 말처럼 룸꼬기도가 제대로 안 된다면 제대로 되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지 다른 기도로 섣불리 바꾸는 것은 나는 반대한다. 우리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혼자 고립되어 도를 닦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봉쇄 수도원이라도 공동체가 있다. 우리는 강력한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 공동체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바라봐주는 것도 중요하다. 룸꼬 기도는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참 좋은 기도이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타인 자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모임”이다. 다른 심신단체나 조직과 같아지더라도 우리의 색깔은 “성경”이다. 묵주기도 등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기도는 개인적으로 많이 하게 하되 모이면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하느님의 언어인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룸꼬기도를 계속하자는 의견이다.
렉시오 디비나에 대해 덧붙이자면 렉시오 디비나는 룸꼬기도의 연장선에서 적정수준 활용하는 것도 참 좋은 방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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